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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은 의문들" - 그림형제가 주관적 선정한 3대 미스터리

Grim Bro 2023. 10. 19. 10:23

Andrew Neel  from Pexels

 

 

질문 쿠폰

 

 

그림형제가 자주 이용하는 서울도서관에서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진행한 것은 지난달이었다. 그림형제는 자신이 이벤트에 당첨된 사실도 모른 채 오늘도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들어섰다. 도서 반납용 키오스크 앞에서 회원증을 인식시킨 것으로 알아챈 것일까 도서관 직원이 다가왔다.

 

"그림형제 회원님 되시지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지난달에 '현자(賢者)에게 묻다' 이벤트에 참여하시지 않았나요?"

 

이어지는 직원의 말은 이 시대의 현자로 불리는 일본의 '마누케 켄자*'와 온라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벤트에 그림형제가 당첨되었는데, 당첨자 공지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림형제가 그 기회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당첨자들은 모두들 '마누케 켄자'와 대화를 통해 인생에 큰 깨달음을 얻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면서 기간이 너무 많이 지나기 전에 얼른 온라인 대화를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국내 모 출판사와 연계하여 이벤트를 진행했던 것이라 현자와의 대담 내용을 책으로도 출판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음, 나만 제외하고 다른 당첨자들은 모두 글감을 넘겨줬단 뜻이군.'

 

그림형제는 혼자 직원에게 알겠다고 짧게 답한 뒤 도서관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림형제는 메일 수신함을 한참 뒤진 끝에 이벤트 당첨자에게 발송된 안내 메일을 열었다. 이 시대의 현자라 불리는 '마누케 켄자'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와 온라인 상담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약을 한다는 홍보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그림형제는 마우스를 스크롤하여 안내사항을 읽어보았다.

 

■ 이벤트 당첨자 안내사항

1. 이 시대의 현자 '마누케 켄자'님과의 온라인 상담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벤트 당첨자에게 제공되는 특별 우선 상담권은 정말로 특별한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마누케 켄자'님과 상담이 가능한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이며, 1회 상담 시 30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누케 켄자'님께 질문을 통해 인생의 해답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질문은 삼가주세요. 1회 상담 시 질문은 최대 3개까지로 제한하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마누케 켄자'님과의 온라인 상담 내용과 제반 기록물은 후원사 'K문고'의 소유이며 이벤트 참가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림형제는 속으로 '그것 참 되게 거들먹거리는 이벤트군'이라고 생각하며 온라인 상담하기 버튼을 눌렀다. 화상회의 화면이 스크린에 펼쳐지고 자동번역기가 가동된다는 팝업이 떠올랐다.

 

 


 

질문 1

 

 

현자로 불린다는 인물이 화면에 얼굴을 드러냈다. 희끗한 눈썹과 수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인상이었다.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무천도사'를 연상시키는 인상이라고 그림형제는 생각했다. 대머리 현자가 먼저 일본어로 무어무어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면 우측의 채팅창에 자동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이 나타났다.

 

'愚者よ、何が気になって私を探したのか?(어리석은 자여, 무엇이 궁금하여 나를 찾았는가?)'

 

다른 사람들은 이 현자라는 사람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림형제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흠..."

 

현자는 고민하는 듯 한 손으로 턱의 수염을 만지작 거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특정 신체부위가 노출되거나 도드라져 보이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어느 누구든 속옷 차림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키니를 입고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해수욕장이나 워터파크에서 속옷의 노출정도와 비키니의 노출 정도는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다. 남성의 경우는 하체의 특정 신체부위가 부각되는 의상으로 남들 앞에 서는 것은 상당히 민망한 일이다. 남자 발레의상을 입은 코미디언들이 관중들 앞에서 민망해하는 콘셉트가 개그 소재로 쓰인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자전거와 헬멧을 쓰면 그 민망함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같다. 드로우즈 팬티와 다를 바 없이 쫙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고도 그렇게 당당하게 엉덩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니 말이다. 그것도 뒤에 바짝 쫓아오는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말이다.

 

혼자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그림형제를 향해 이윽고 현자가 입을 열었다.

 

"分からない (몰라)"

 

 


 

질문 2

 

 

현자는 모른다는 대답을 하고서 자신도 조금은 민망했는지 얼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달라는 말을 했다. '너무 하찮은 질문을 해서 그런가'라고 그림형제는 생각했다. 하긴, 몰라서 모른다고 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대답하기 싫을 정도로 하찮은 질문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침을 한 번 꾹 삼킨 그림형제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국가대표를 선발해서 올림픽에 내보내는 것을 떠올려보자.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선수들을 뽑기 위해 엄격한 선발기준을 적용한다. 즉,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선수를 뽑는다. 그 선수들 중에 만약 전성기가 한참 지난, 지금은 기량이 예전만 못한 선수가 한 명 끼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지금 한창 최고의 퍼포먼스를 구가하는 선수들도 많은데 왜 굳이 덜 뛰어난 선수를 선발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노령의 선수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면 어떻게 될까? 마치, 왕년의 스타들을 올림픽에 내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야구 대표팀 선발투수로 선동열, 농구 대표팀 주전 가드로 허재, 레슬링 대표팀 선수로 심권호, 양궁 대표 선수로 김수녕, 탁구 대표팀 현정화... 이 사람들을 2024년 파리 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내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고, 회사를 대표하고, 조직을 대표하는 자리는 언제나 최전성기가 지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인지능력과 학습능력이 떨어질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시스템인 셈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엉망진창인 이유가 혹시 이것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림형제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흠..."

 

이번에도 현자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수염만 만지작 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分からない (몰라)"

 

 


 

질문 3

 

 

나름 시사적인 시각이 담긴 질문을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그림형제는 적지 않게 맥이 빠졌다. 이쯤 되면 도대체 아는 건 무언가 싶어 진다. 반 이상 체념하는 마음으로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는 그림형제다. 역시 큰 기대는 없는 듯 무심하게 질문했다.

 

사람은 나이가 듦에 따라 프사가 달라진다. 프사가 사람의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에 심지어는 프사를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아낼 수 있다는 이른바 '프사 프로파일링'도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10대 남자의 관심사는 스포츠와 게임으로 압축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표출한다. 그러다가 여친이 생기는 순간 프사에 대한 권한을 빼앗긴다. 여친이 원하는 컨셉 사진을 찍어서 프사에 올려야 한다. 안그러면 혼난다. 결혼 후에도 눈치껏 결혼사진이나 아기 사진을 프사에 올려주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여자 앞에서 파리 목숨이 되는 불쌍한 남자들의 이야기는 필자의 이전 글로 만나볼 수 있다.)

그러다가 40대가 되어서야 잠깐 프사의 결정권을 누리게 된다. 그러면 남자는 여지없이 골프 사진 따위를 올려놓는다. 간혹 등산, 배드민턴 같은 것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다 50대부터는 가족사진이 흔하게 발견되는 패턴이 된다.

 

여자의 경우 10대 때는 주로 연예인이나, 자신의 얼굴을 포토앱으로 꾸며서 올리거나 한다. 단, 본인의 사진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20대는 여행, 카페, 레스토랑, 음식점, 호텔, 리조트 등이 배경으로 압축된다. 그리고 반드시 그곳에서 뒷모습과 손가락 V가 등장한다. 30대부터 40대는 자녀의 사진으로 도배 수준이 된다. 바로 그다음이 문제인데, 뜬금없이 꽃이 등장한다. 여러 가지 관점으로 살펴보더라도 맥락상 꽃이 등장하는 것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 이상 여성들의 프로필 사진은 압도적으로 꽃이 많다. 일종의 사회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까? 아니면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인 것인가? 매우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저 나이가 되면 꽃이 좋아지게 되는지 말이다.

 

"후우~ 分からない (몰라)"

 

현자 '마누케 켄자'는 이번에도 난색을 표했다. 한숨을 내쉬는 표정에서 짜증이 묻어 나오고 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왜 궁금하냐고 되레 그림형제에게 질문을 해온다.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의지가 박약한 자신을 다잡을 수 있는 마음가짐은 어떤 것이 있는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맞는지 등 다른 사람들처럼 인생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림형제는 현자의 말이 실시간으로 번역되고 있는 채팅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뻔한 질문을 반복해서 해왔던 모양이구만.'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림형제가 다른 사람들처럼 질문하지 않는 것이 현자를 분노하게 만든 셈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귀중한 질문 기회를 좀 더 중요한 질문에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기대 범위 안에서만 질문을 해야만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운 상상력과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고, 질문하고, 탐구하는 것이 인간이다. 아무리 하찮은 호기심이라도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는 동일하다. 예컨대, 특수상대성 이론의 원리를 이해하고 싶은 호기심과 50대 여성들 프사가 왜 꽃 사진인가를 궁금해하는 호기심을 놓고 둘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둘 다 똑같은 호기심, 궁금증일 뿐이다. 그것을 두고 중요하다, 혹은 덜 중요하다는 가치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생각의 범위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다.

 

스크린 속'마누케 켄자'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것 같았다. 목에 핏줄이 보일 정도로 외쳤다.

 

"一体それがどうして知りたいの? (도대체 그게 왜 알고 싶어?)"

 

분노로 가득 찬 질문을 받은 그림형제는 몇 초 동안 눈을 깜빡이다가 현자를 향해 대답했다.

 

"몰라."

 

 

 

*주) 마누케 켄자 (間抜け 賢者) : 멍청이 현자

참고자료

- 브런치스토리 : 나이에 따른 에이징 커브는 존재할까? by 강타

- 브런치스토리 : 나이에 따른 에이징 커브는 존재할까? 두번째 이야기 by 강타

- 브런치스토리 : 노장이 되어가는 '에이스'의 부진을 바라보며 by  JUNE HOLIDAY

- 브런치스토리 : 노화와 인간 정신: 나이에 따른 인간의 인지능력의 변화 by 김근수

- 브런치스토리 :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69. 비키니와 속옷 by Zero

- 브런치스토리 : 꽃 사진 수천 장, 단톡방 프사는 전부 꽃 아니면 하늘 by 춘춘

- 브런치스토리 : 6년 만에 카톡 프사를 올리다 by 정규림

- 브런치스토리 : 50대 여성 프사는 '꽃대궐' by 정혜영

- 나무위키 : 속옷, 프사

- 한겨레 : 45살이 넘으면 머리가 나빠진다?…그렇답니다 by 곽노필 기자

-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 연령 증가에 따른 노인 인지기능의 감퇴 양상 by 박종환

- 루리웹 : [유머] 나이별 인지능력 변화 by 아랑전설mk-1

- 이토랜드 : [회원게시판] 진짜 궁금한게 ... 여자들 비키니 수영복과 속옷 차이는? by 신성사회황국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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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Neel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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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형제의 브런치스토리

회사원 에세이스트 | 회사에서 써먹던 잡기술들을 동원하여 장르불명의 요상한 글을 씀. 재미없는 사람과 신 맛 과일을 싫어함. 괴짜라는 평가를 칭찬으로 생각함. 목표는 헛소리의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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