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4. 13:55ㆍ카테고리 없음
검사는 그런 이유로 사형을 구형한다
문이 열리고 포박된 닭이 양옆에 교도관의 손에 이끌리어 입장하고 있다. 발에는 쇠사슬이 묶여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렁치렁 소리가 났다. 이윽고 재판정에 도달한 닭을 두 교도관은 피고석에 앉혔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를 사형에 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 측은 무슨 혐의로 피고의 사형을 구형하시는 것이지요?"
다짜고짜 사형을 구형하는 검사를 향해 판사가 질문을 던졌다. 검사는 잠시 배심원석을 바라보았다. 이번 국민참여재판에는 다이어트에 실패하여 신경이 날카로워진 여성 배심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섣불리 그들의 신경을 건드렸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검사는 판사를 향해 시선을 돌려 대답한다.
"피고는 후라이드 치킨이 되어야 합니다."
"흠... 후라이드치킨이라면 못 참지."
검사의 답변을 들은 판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배심원석은 이미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검사의 말이 나온 직후부터 웅성이고 있었다.
"피고에게 후라이드 치킨형을 선고한다." (쾅쾅쾅)
세 번의 법봉 소리에 피고는 법정 밖으로 끌려 나갔다. 배심원석에서는 나지막한 환호의 소리마저 들려오는 것 같다. (※법봉 : 법정에서 판결을 선고할 때 사용하는 망치처럼 생긴 도구)
문이 열리고 다음 피고가 법정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피고의 뒤에서 문이 닫힌다.
"피고를 닭볶음탕형에 처한다." (쾅쾅쾅)
계속해서 포박당한 닭이 줄지어 법정으로 들어선다. 다음 들어갈 닭들은 법정 밖 문 앞부터 줄을 섰다. 그렇게 서기 시작한 줄은 지하철 교대역 10번 출구 앞까지 늘어졌다.
"피고를 치킨 너겟형에 처한다." (쾅쾅쾅)
"피고를 닭꼬치형에 처한다." (쾅쾅쾅)
"피고를 유린기형에 처한다." (쾅쾅쾅)
"피고를 치킨 부리또형에 처헌다." (쾅쾅쾅)
판사의 호흡이 가빠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피고의 입장 행렬과 그때마다 다른 처형 명분은 판사의 정신과 체력을 급속도로 고갈시키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도 판사는 계속해서 판결을 내렸다.
"피고를 삼계탕형에 처한다." (쾅쾅쾅)
"피고를 치킨 카라아게형에 처한다." (쾅쾅쾅)
문의 여닫힐 때마다 법정 밖의 풍경이 엿보인다. '맘스터치'와 'BHC'에서 영업사원이 나왔다. 그들은 줄 서서 대기 중인 닭들에게 명함을 주며 섭외를 시도했다. 대화가 잘 풀리면 그 자리에서 태블릿 PC를 이용해 계약까지도 이루어졌다.
판결을 받고 법정을 나서는 피고 닭들은 각기 자신이 받은 형이 적힌 스티커를 부여받고 버스에 올랐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법정에서는 법봉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닭의 처형법 (요리법)
닭은 처참한 처형을 당한 후 맛있는 요리로 부활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대표적인 닭요리의 닭고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조금 더 실감이 날 수 있다.

※ 팽형(烹刑) : 고대 형벌 중 하나로, 끓는 물에 박거나, 불타는 기름가마에 던져 넣어 처형하는 방법.
※ 포락지형(炮烙之刑) : 중국 은나라 주왕(紂王) 때, 기름칠한 구리 기둥을 숯불 위에 걸쳐 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던 형벌.
닭요리별 처형 방법 (요리법)
닭은 대부분 참수로 생을 마감한 뒤, 2차 처형을 당한다. 조선시대 형벌로 치면 부관참시* 같이 이미 죽은 자를 무덤에서 꺼내어 다시금 그 시체를 베는 등의 극형을 내리는 셈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3차 처형을 당하는데 뜨겁게 가열하는 것이 그것이다. 가열하는 방법은 튀기거나 삶거나 굽는 방법이 대표적이며, 볶거나 조리는 경우도 있다.
※ 부관참시(剖棺斬屍) : 직역하여 관을 쪼개고, 시체를 벤다는 뜻으로 이미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질렀던 죄상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어 그 시체에 극형을 내리는 걸 말함

각 나라들의 대표적인 닭 요리법은 대부분 위와 같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닭은 요리로 거듭나기 위해 최소 2~3회의 처형을 거쳐야 한다.
닭을 먹지 않는 나라는 없다
특정 음식을 먹거나 먹지 않는 선택은 다양한 이유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에 따라 종교에 의해서 선택하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서, 또는 생명과 환경에 대한 신념 때문에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 단위로 묶어서 본다면 닭을 먹지 않는 나라는 없다. 돼지를 먹지 않는 나라, 소를 먹지 않는 나라는 있다. 닭은 인간의 생활권 안에서의 거의 모든 기후에서 사육할 수 있고, 최근에는 전 세계 물류망이 촘촘해져서 닭고기 유통하는 것마저 용이하다.
그런 의미에서, 전 세계 각국의 닭요리를 알아보았다.
■ 주요 설정과 고지사항
1. 지면과 필자의 체력의 한계로 이 글에서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를 다룰 수는 없었다. 각 대륙별로 주요 국가들을 위주로 알아보았다. (인터넷 자료조사의 한계로 인해, 한국인들의 왕래가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일수록 정보가 적었다.)
2. 마찬가지로, 지면과 필자의 체력의 한계로 전 세계 닭요리의 사진과 구체적인 요리법까지 소개할 수는 없었다. 주로 많이 알려진 몇 가지의 요리를 선별하여 소개한다. 계란 요리까지 포함할 경우 종류는 더 많아지고 닭이 더 불쌍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계란 요리는 생략했다.
3. 닭을 요리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기 위해 '처형'하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필자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맛 좋은 고기를 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닭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다.
4. 본 주제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결론이 다를 수 있다. 이 글은 전적으로 필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기술해 본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기술해보고 싶은 사람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시도해 보기 바란다.
5. 이 글의 내용은 법률적,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았고 정답이 아니다. 또한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웃고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인터넷 조사를 통해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전 세계 각 나라들의 닭요리는 종류도 많고 다양했다. 그래서 전적으로 필자가 조사한 결과를 기준으로 닭요리 종류 국가별 랭킹을 매겨보았다.
닭요리 종류 국가별 랭킹

1위~7위
가장 많은 닭요리 종류를 가진 나라는 중국으로 조사되었다. 조사된 것만 총 28종이었으며 한국어, 영어 자료 외 더 깊은 조사를 한다면 더 많이 도출될 수도 있었다. 조사 중 읽은 모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는 약 1,000여 가지의 닭 요리가 존재한다고도 한다.
한국인들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후라이드 치킨의 종주국은 미국으로 보는 것이 대세였다. 눈에 띄는 또 다른 점은, 멕시코와 러시아의 닭요리도 꽤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지파이'라는 이름으로 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유통된 음식은 대만에서 온 것이라는 점도 새로 알게 되었다.
한국에 흔하게 접해볼 수 있는 것들은 중국, 미국, 일본, 태국, 멕시코의 닭요리들이 아닌가 싶다.


8위
많은 나라들이 8위권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인도의 '탄두리치킨'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또, 인도 요리 중 '무르그 마카니'라는 것은 버터를 사용한 인도의 치킨 커리로 이와 관련된 요리법을 소개한 인터넷 자료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냥 일상에서 흔히 말하듯 '치킨 커리' 등으로 명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요리 종주국의 현지어 요리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요리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의 닭요리 '코코뱅'도 인터넷에서 제법 많이 소개가 된 음식이다. 특이한 점은, 와인을 넣어 닭볶음탕처럼 양념을 졸인다고 한다는 것이다. 역시 프랑스의 와인부심은 대단하다. 닭한테도 와인을 먹이다니 말이다.


9위~10위
9위에 든 나라 중 필자가 5살 때부터 2년간 살았던 스페인이 있다. 온 가족이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이주해서 살았던 관계로 필자는 집에서도 어머니의 한국화 된 스페인 음식을 먹었다. '포요'가 스페인어로 닭이라는 뜻인데 저 '아로스 콘 포요'라는 음식 이름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마드리드의 유치원을 다닐 때는 스페인어로 유창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그라시아스', '아디오스' 정도만 기억날 뿐이다. 귀국 후 빠른 속도로 망각의 길로 들어섰다.
우리에게 '치킨 케밥'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튀르키예 음식은 현지에서 '시시 티부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어벤저스 1편 마지막 장면에서 토니 스타크가 의식을 되찾으며 '너희들 슈와마 먹어본 적 있어?'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쿠키 영상에서 어벤저스 멤버들과 함께 폐허가 된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때 언급된 음식이 바로 이 '샤와르마'이다. 케밥처럼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얇은 밀가루 빵에 싸 먹는데 이집트와 중동 아랍권 나라에서 많이들 먹는다고 한다.
기왕에 '어벤저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관련된 요리를 하나 더 소개해본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는 '비전'과 '완다'가 요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요리 이름이 바로 '파프리카시'이다. 극 중 '완다'의 출신이 동유럽 쪽으로 그려진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닭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닭고기뿐만 아니라, 닭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먹는 닭 말고도 많은 곳에서 닭과의 친근함을 실감할 수 있는 문화들을 접할 수 있다.
브랜드에서 만화 또는 게임 캐릭터,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태어난 해에 닭의 이름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닭을 좋아하는 것을 닭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설령 인간들이 닭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형구형으로 끝나고 마는 배신의 관계라면, 닭의 입장에서는 인간을 그리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닭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고 준비하면서 우연히 서울의 닭도리탕 맛집 두 곳을 이틀 연이어 가게 되었다. 평일이나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름난 맛집들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풍년닭도리탕의 땅콩향이 살짝 느껴지는 걸쭉한 국물이 더 좋은 것 같다.
풍년닭도리탕
서울 중구 세종대로14길 17-5
계림 종로본점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4길 39
닭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수많은 닭요리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학습하는 데에 엄청나게 긴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동물복지, 환경, 생명존중 등의 관점으로 너무 치우치게 되면 무거워질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닭이 우리 제공해 주는 것은 고맙게 받아들이되, 닭의 죽음은 바로 우리로 인해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울푸드라 함은 상한 몸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고 위로해 주는 음식을 말한다. '치킨'은 범 국민적 소울푸드로 꼽힌다. '소울치킨'이라는 곡을 들어보면 R&B 소울 풍의 리듬과 멜로디 위에 '치킨'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담았다. '내 몸한테 너무 미안해'라는 가사로 보았을 때 '치킨'은 몸이 아닌 마음만 위로해 주는 것으로 정의를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참고자료
- 브런치 : 브롤리Toon 치킨이 필요한 날! 이깟 치킨이 뭐라고~ by Brollii
- 브런치 : 좌충우돌 교실 일기 치킨 튀겨요~ 웃으며 말하니 더 오싹함. by Aheajigi
- 브런치 : 나무둘 심리학 라디오 내가 그동안 먹은 치킨의 수 by 나무들
- 브런치 : 인도, 집콕하며 뭐하고 살까? 19화 베트남 치킨 쌀국수, 포가 만들기 by kaychang강연아
- 브런치 : [시드니] 호주 고유의 음식 맛보기 치킨 파르미자나 (Chicken Parmigiana) by 읽과삶
- 브런치 : 요리와 레시피 치킨 카치아토레 이탈리아 사냥꾼의 닭요리 by 고부엉씨
- 브런치 : 형사 criminal case 형벌의 종류 법률 공부 by 윤소평변호사
- 브런치 : 마트 삼촌의 고기 맛있게 먹는 법 고기가 맛있어지는 온도 177도(구이편) 5화 - 오늘은 이것만 기억하세요. 마이야르는 177도부터! by 경욱
- Tstory : 신나는 미식 세상 [요리 과학] 세 가지 종류의 삶는 법과 닭가슴살 by 요리 해설하는 남자
- Tstory : 수비드 머신 찜닭소스 활용 찜닭 만드는법 by 요리하는 놈
- Tstory : 중화요리, 닭고기 요리들 ~2 by 콩지
- 나무위키 : 닭고기, 치킨, 통닭, 닭, 분류:한국의 닭고기 요리, 닭튀김, 양념치킨, 사형 종류, 치킨 모암베, 번치코, 판치토 피스톨레스, 신드라몬, 궁보계정, 닭갈비, 찜닭, 코코뱅, 지파이, 부관참시
- 위키피디아 : 분류:나라별 닭고기 요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형벌
- Google Patent : 닭볶음탕의 제조방법 by 유정희, 함영일
- slowalk.blog : Idea 가축은 매 초 마다 몇 마리나 도축되는 걸까? by slowalk
- SBS News : [뉴스쉽] 닭은 죄가 없다...치킨으로 본 '산업'과 '미식' 사이 by 이현식 기자, 장선이 기자
- 경향신문 : Interactive News '적게 먹고 빨리 크는 스모닭, 더 이상 동물이 아니다 by 남지원 기자
- LG케미토피아 : 프랜차이즈 대세치킨 부럽지 않다! 집에서 치킨 맛있게 튀기는 방법 by 정충만
- WikiHow : 닭 삶는 방법
- Bluexmas : 닭가슴살 완전 정복
- (사)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 소비현황
- 네이버블로그 : [카오짜이] 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 팟카파오(ผัดกระเพรา) by 카오짜이
- 네이버블로그 : 행복한 일상 거부할 수 없는 나라별 대표 닭요리! by 동원 F&B
- 네이버블로그 : 중국 문화 관련 중국의 닭 요리 BEST 5 by 시사중국어사
- 네이버블로그 : 야운처사 일상기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의 영모화(翎毛畵)인 투계도( 鬪鷄圖) by 야운처사
- Youtube : 닭.. 어디까지 알고 있니? 전세계 속 닭의 연대기|요리인류 닭고기 로드 1부 FULL|[다큐여행] KBS 20171202 by KBS여행 걸어서 세계속으로
- Youtube : 브라질 사람이 만드는 진짜 브라질 치킨 by 미트러버Meatlover
- 아시아경제 : 문화라이프 헝가리에선 왜 새해 첫날 '치킨'을 먹지 않을까? by 이현우 기자
- 대전일보 : 오피니언 [여백] 닭 수난시대 by 황진현
- 아하 : 닭고기를 안먹는 나라는 없나요?Q)우람한당나귀214 A)반가운두루미911
Main Photo : Lucas from Pexels
그림형제의 브런치스토리
회사원 에세이스트 | 회사에서 써먹던 잡기술들을 동원하여 장르불명의 요상한 글을 씀. 재미없는 사람과 신 맛 과일을 싫어함. 괴짜라는 평가를 칭찬으로 생각함. 목표는 헛소리의 대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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